향기 치유, 향의 역사, 향기 문화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와 향의 역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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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와 향의 역사

사이앱 2022. 7. 27. 19:33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와 향의 역사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와 향의 역사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와 향의 역사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향을 즐겨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우리는 당대를 대표하는 향수, 키피를 알아보기도 했지요. 오늘은 향에 자신을 던졌던 파라오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사람들이 향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도시국가에서 향료 용도

전설과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1000km 떨어진 고대 도시 국가의 수도 테베가 있습니다. 지금은 룩소르라고 불리는 이곳은 나일강을 끼고 고대 문명이 발생하였으며 향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룩소르의 서쪽 사막 계곡에 아크로폴리스 왕가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3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베일에 싸여 있다가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원형 그대로 발굴된 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은 황금 마스크의 주인공이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18세에 사망하였던 이집트의 18대 왕 투탕카멘입니다. 투탕카멘의 능묘에서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미라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향고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이 항아리는 백합류를 이용한 사그 디, 후아 무이, 몰약 카네라와 벤 오일을 원료로 한 벡토 피움 헤나의 꽃 향료를 이용한 녹색의 향료 시푸리늄을 섞어 향고 즉 연고 상태의 향료로 만들어 담은 아름다운 Alabaster 설화 석고라고 하죠? 앨러배스터 항아리입니다. 3000년이라는 장고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향은 파라오의 기쁨을 찬란하게 전하고 있으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향의 실존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까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기록상에 나타난 이집트 최초의 향료는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제5대 파라오 사훔이 훈트라는 지방을 여행하면서 향료 8만 포대를 사 왔다는 것입니다. 1대 파라오 때 만들어진 석관에 '가축을 도살하고 산양을 잡아 제물을 마련하고 불에 향료를 던져'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제18대 파라오 투탕카멘의 능묘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주로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향을 피웠고 시체 보존을 위해 방부제로 향료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향료를 사용하였을까요?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죽은 사람의 몸을 야자나 포도로 만든 과실주로 깨끗하게 닦아줍니다. 그리고 끝이 구부러진 꼬챙이를 코로 넣어서 뇌를 꺼냅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기관이 뇌가 아닌 심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흑요석과 같은 단단한 재질의 칼로 시체의 배를 가르고 폐, 위, 간, 창자를 제외한 모든 장기를 제거합니다. 폐, 위, 간, 창자를 몸 밖으로 꺼내 각각의 캐노픽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특별한 상자를 만들어서 소중하게 보관을 했었죠. 몸속에는 오직 심장만을 남겨두었습니다. 다음으로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40일 동안 나트론이라는 천연 소금을 덮어 보관합니다. 소금이 인체의 수분이 빠져나가게 돕죠. 그리고 40일이 지나면 온몸이 쭈글쭈글 해집니다. 쭈글쭈글해진 몸에 톱밥과 천 등을 넣어서 마치 인형에 솜을 채우듯 몸을 채우고 향료를 넣습니다. 건조한 피부에도 향료를 발라 냄새가 나지 않게 하고 피부가 윤기를 띠게 합니다. 깨끗한 천으로 목, 팔, 다리를 감은 뒤 몸의 각 부위에 부적을 올립니다. 이후 다시 큰 천으로 온몸을 단단하게 감습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향은 방향, 방부 및 방충의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이처럼 미라를 만든 것은 그들의 독특한 영생관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중 영생과 관련된 영혼은 ba와 ka가 있었습니다. 바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해주는 인격이나 개성을 의미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바는 여전히 죽은 몸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영혼 가운데 카는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분 짓는 영적인 요소의 개념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카가 몸을 떠나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카가 육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카는 소멸되지 않고 육신으로 돌아와 바와 결합하여 아크라는 새로운 영혼을 이루게 되는데 이 단계가 되면 우리는 이 사람들은 죽음이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상으로 대접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신성한 영혼이 머무는 장소였습니다. 육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영혼이 부활할 수 없기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육체를 생전과 같이 보존하기 위해서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파라오와 같은 권력자들은 사후 영혼의 부활의 미래를 대비해서 미라를 짓고 또 피라미드를 짓고 또 미라를 만드는데 공을 들여서 신에게 바치는 향료를 대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미라를 만드는데 향료를 사용하는 것은 당시의 일관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던 방법은 소금과 밀랍을 이용한 아주 소박한 장례 풍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알려진 박물관의 미라들은 특권층만을 위한 것입니다. 단순히 자연의 산물을 이용한 것이 아닌 화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영원히 보존될 수 있도록 처리한 미라는 파라오와 왕족과 같은 최상위 계층에만 허락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향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인 파라오의 위엄과 신성성을 강조하는 수단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영역에 머물렀던 향이 반신반인의 존재였던 파라오를 거쳐 대중화되는 데는 클레오파트라의 영향이 컸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향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죠. 클레오파트라는 병적일 정도로 향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손을 씻을 때마다 장미유와 샤프란, 제비꽃 추출액으로 만든 향고를 양손에 발라 무심코 내미는 손에 향기가 함께했다고 합니다. 한번 양손에 바른 향료의 가격이 400 데나리온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1 데나리온이 성인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 그 사치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욕물에는 장미꽃을 가득 띄우고 목욕물에 몸을 담근 후에는 시돈산 감송유를 몸에 발라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마다 온몸에서 은은한 장미와 감송향이 그윽했다고도 합니다. 모든 음식물과 심지어는 사탕과자, 음료수, 셔벗 등의 디저트에도 온갖 향료를 넣어 한마디의 말과 한 모금의 숨길조차도 향기롭게 만들었다고 하죠. 뿐만 아니라 유람선 손잡이와 같이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곳에 향을 뿌리게 했습니다. 그녀가 이처럼 향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삶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향을 사용하면 더 많은 사람과 성적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향을 사용하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침공한 로마의 두 지도자 줄리어스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유혹할 때 침실에 무릎이 잠길 정도로 꽃을 채우고 온 몸에는 향수를 발랐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는 그 향기에 취해 클레오파트라의 품에 안겼다고 하지요. 클레오파트라에게 향은 권력 그 자체이자 동시에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향을 인간의 성적인 매력 즉 육체적인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향이 신의 독점물이 아닌 인간이 향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향을 인간이 사용하게 되면서 이집트의 향 제조법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수지를 이용하여 향료를 제조하는 것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 서적에서 여러 가지 향료에 관한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몰약, 육계, 갈바눔 수지 등을 사용한 많은 향료 물질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고 구취제거에 사용하는 향정 처방도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금요일에 집회가 열리곤 했는데 그곳에는 신체에 향을 뿌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향료가 들어있는 사탕과자나 음료수, 셔벗 등이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여자들은 향료가 들어있는 물로 목욕을 하고 남자들은 향료가 들어있는 연고를 발랐습니다. 여유로운 가정에서는 향기가 넘쳐흘렀다고 합니다. 축제가 열리면 거리에서 향을 피웠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도 좋은 향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투탕카멘의 능묘에서 발견된 향고는 끈적끈적한 물질로 손에 묻히면 체온으로 약간 녹는다고 합니다. 3,0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향기가 남아 있는데 느끼한 냄새로 마타리과 식물의 냄새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감송향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투탕카멘의 향고가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은 강한 방부성을 가진 유향이나 보류 성이 좋은 방향성 수지가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 시대의 향

최근에는 더 오래된 비법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법에 따르면 우선 육계, 박하, 창포, 향모, 주안, 셰난 타스, 렌티스크스, 라 우르스, 카시아 등을 가각 동량씩 채취하여 건조해 분말로 만들어 잘 섞어 놓고, 이 분말을 같은 양의 페니키아 두송, 카시아, 헤나, 시프르, 론 그스를 일주일 동안 포도주에 담가 놓습니다. 그다음에 건포도를 5일 간 포도주에 담가서 테르핀 수지와 봉밀을 섞어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두를 혼합하여 몰약을 더한 후 전체를 잘 혼합하여 제조한다고 합니다. 꽤 복잡한 비법으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든 kyphi는 정신을 맑게 하고 기분을 도취시켜 즐겁게 하는 작용이 있었습니다. 밤의 향료로도 애용되었으며 먹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에서는 육계와 감송향을 주성분으로 하는 향료를 애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라에는 거대한 향료 공장이 있어 다양한 향료 제조가 이루어졌으며, 다른 나라와의 교역도 활발했습니다. 특히 산뜻한 장미향, 시프르 향, 백합향 등은 남성용으로 애용되었고, 향의 지속성이 강한 몰약, 메가 레이온, 감화, 박하향, 감송향은 여인들을 위한 향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알코올을 알지 못했기에, 기제로서 불휘발성 기름이나 포도주를 이용했는데, 좋은 포도주를 사용하면 한층 부드럽고 좋은 향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향은 신의 독점물이 아니고 인간이 사용하는 물품으로 바뀌었습니다. 비록 사치품이었기에 왕족이나 부유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온 향은 이제 대충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온 향은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에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에 따라 새로운 향이 만들어지는 무한한 상호작용의 길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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